우리는 크레스티드게코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을까요?
크레를 키우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크레는 원래 사람을 모른다."
"파충류라 교감이 안 된다."
"수컷은 발정 때문에 무섭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알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크레스티드게코를 키우고 번식하며 수많은 개체들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크레스티드게코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아직 크레스티드게코는 개나 고양이처럼 행동학적으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진 동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도 사육자들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 역시 정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오랫동안 크레를 키우며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갖게 된 생각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분양 문의를 받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있습니다.
"수컷은 발정 때문에 무섭지 않나요?"
물론 수컷은 발정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수컷을 피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별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환경과 경험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크레스티드게코가 사람을 어느 정도는 인지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개나 고양이처럼 보호자를 알아보고 반기거나,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구분하지 못하는 동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키워본 아이들은 익숙한 환경과 낯선 환경의 차이를 분명히 보였고, 사람에 대한 반응도 상황에 따라 달랐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연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이 반복될수록 저는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분양 후였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손도 잘 타고 조용하던 아이가 새로운 집으로 간 뒤 갑자기 유리를 타거나 사육장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원래 이렇게 활발한 아이였나요?"
"계속 우다다를 해요."
라는 연락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먹이를 거부하고 숨어만 있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율도 시작하고 다시 차분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성격이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적응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양을 받으신 분들께 한 가지를 자주 말씀드립니다.
처음부터 넓은 사육장에 바로 넣기보다는 일주일 정도는 조금 더 좁고 어두운 환경에서 먼저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새로운 집에 온 크레스티드게코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변화를 한 번에 겪고 있습니다.
사육장도 달라지고, 냄새도 달라지고, 주변의 소리와 분위기까지 모두 달라집니다.
이럴 때는 활동 공간이 넓은 것보다 몸을 숨길 수 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충분히 먹이도 먹고 안정을 찾은 뒤 실제 사육장으로 옮겨주면 훨씬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제 경험에서 느낀 방법일 뿐이며 모든 개체에게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호텔링을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손님 크레를 맡아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공간이라 긴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평소 사용하던 은신처와 익숙한 물건을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니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대로 작은 환경 변화에도 며칠 동안 먹이를 먹지 않거나 밤새 우다다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저는 크레스티드게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기의 경험도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 앵무새를 키우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완조는 어린 시절 사람과 함께 생활하며 사람을 익숙한 존재로 배우고, 그 경험이 부족하면 사람을 더 경계하는 성향이 남기도 한다고 합니다.
물론 크레스티드게코와 앵무새는 전혀 다른 동물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기의 경험이 이후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부분만큼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이비 때부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사람 손을 경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잠깐의 핸들링. 핸드피딩.
사람 손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경험을 조금씩 만들어 주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개체가 똑같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순한 아이도 있고, 끝까지 예민한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키워본 개체들에서는 사람 손을 유난히 무서워하던 아이가 조금씩 편안해지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습니다.
입양자분들께도 "생각보다 순하다.", "수컷인데도 얌전하다."는 말씀을 들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제 생각이 완전히 틀린 방향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이 정답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육에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고, 저보다 훨씬 오래 크레를 키우신 분들은 또 다른 경험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다만 저는 앞으로도 "크레스티드게코는 원래 그래."라고 단정하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를 먼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조금 더 적응할 시간을 주고,
조금 더 사람을 덜 무서워하게 해주고,
조금 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며 크레를 키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크레스티드게코 관련 소식을 보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유기되는 개체.
방치되는 개체.
충동적으로 입양했다가 다시 분양되는 개체.
안타깝게도 다른 반려동물이었다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을 일들이 크레스티드게코에서는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같은 생명인데도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도 안타깝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정말 크레스티드게코를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최근 몇 년 사이 크레스티드게코는 정말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반려동물로 키우는 분들도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반려문화와 책임감이 그 속도를 아직 모두 따라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크레를 하나의 취미나 상품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해야 할 생명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조금씩 더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크레스티드게코가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을 표현하는 동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환경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고, 익숙함과 낯섦을 구분하며 살아가는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사람을 덜 무서워할까.', '어떻게 하면 새로운 환경에서도 조금 더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며 크레를 키워갈 것입니다.
언젠가는 "크레는 원래 그래."라는 말보다,
"이 아이가 더 편안하게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를 먼저 고민하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컷이라는 이유만으로 미리 두려워하지 않고,
겁이 많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지 않고,
크레스티드게코도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존중받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크레를 키우며 제가 조금씩 바뀌게 된 생각을 적어본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