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 시장은 정말 무너졌을까? 피들 ‘판매완료’로 배우는 브리더의 시장 읽는 법 2화
요즘 “크레 시장이 무너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과거 높은 가격을 받던 모프의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베이비 공급량은 늘었으며,
예전이라면 쉽게 분양됐을 개체가 지금은 오래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브리더 입장에서 체감경기가 안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체 한 마리의 가격이 떨어진 것과
시장 전체가 작아진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격이 떨어져도 시장규모는 커질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화하면 시장의 거래액은
가격 × 거래량
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균 50만원짜리 개체가 100마리 거래됐다면 거래액은 5천만원입니다.
그런데 평균가격이 20만원으로 크게 떨어졌더라도 300마리가 거래된다면 거래액은 6천만원입니다.
즉,
단가 하락 = 시장규모 축소
가 자동으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가격이 변할 때 구매량이 얼마나 크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개념이 수요의 가격탄력성(Price Elasticity of Demand)입니다.
크레스티드게코 한 마리가 100만원일 때는 관심은 있어도 구입하지 못했던 사람이
10만원, 20만원까지 내려오면 시장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기존에 한 마리만 키우던 사람이 두세 마리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기존 보유자에게는 자산가치 하락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시장 전체에서는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시장파이는 줄지 않았을까?
이 부분은 과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크레스티드게코 생체 거래만 따로 떼어 연도별 총 거래건수와 총 거래액을 집계한 공신력 있는 통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크레 시장은 확실히 커졌다.”
또는
“시장파이가 절대 줄지 않았다.”
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프 가격이 크게 내려갔다는 이유만으로 시장 전체가 무너졌다고 판단하는 것도 근거가 부족합니다.
더 넓은 반려동물 소비환경 역시 축소 일변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3,000가구를 방문 조사해 발표한 2025년 국가승인통계에서는 현재 거주지에서 반려동물을 직접 양육하는 가구 비율이 29.2%로 나타났습니다.
또 정부는 국내 반려동물 연관산업을 2024년 75억 달러에서 2034년 169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통계의 산업범위는 펫푸드·의약품·용품·서비스 등이며 동물 생산·수입·판매업 자체는 제외되므로, 이를 크레스티드게코 생체시장의 성장 근거로 직접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표현은 이것입니다.
“크레 가격은 무너진 부분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크레 소비시장 전체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가 체감하는 것은 ‘시장 붕괴’보다 ‘시장 재편’입니다.
이 부분은 통계가 아니라 실제 브리딩과 판매를 하면서 느끼는 제 생각입니다.
과거에는 모프 자체가 희소하면
“아잔틱이니까 비싸다.”
“세이블이니까 비싸다.”
가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급이 늘어나면 유전형질 자체의 희소성 프리미엄은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그러면 소비자가 다음을 보기 시작합니다.
같은 아잔틱이라도 어떤 색감인지,
커버리지가 어떤지,
체형은 어떤지,
혈통은 어떤지,
판매자는 믿을 만한지.
경제학적으로 보면 단순한 희소성 경쟁에서 상품차별화(Product Differentiation) 경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모프인데 왜 가격차가 크게 나는가.
이 질문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공급이 적을 때는
“아잔틱이다.”
자체가 상품의 핵심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아잔틱이 아주 많아지면 소비자는
“그래서 이 아잔틱은 다른 아잔틱과 뭐가 다른데?”
라고 묻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브리더가 만드는 부가가치가 중요해집니다.
색감,
체형,
패턴,
선별,
검증된 혈통,
브리더의 방향성.
결국 같은 모프를 가진 크레스티드게코라도 소비자에게는 완전히 동일한 상품이 아니게 됩니다.
여기에서 제가 이전부터 계속 고민해온
‘브리더의 아이덴티티’
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을 본다는 것은 유행을 따라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도 제가 한참 뒤에 알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시장을 보면
“지금 뭐가 잘 팔리지?”
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 개체를 찾고,
브리딩하고,
시세가 떨어지기 전에 시장에 내놓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피들의 판매완료를 보면서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합니다.
왜 이 개체는 선택받았을까?
왜 이 개체는 같은 모프보다 높은 가격을 받았을까?
지금 시장에 너무 많은 표현은 무엇일까?
반대로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지만 공급이 부족한 영역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중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장분석의 목적이
남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하기 위한 것에서
내가 어디에서 경쟁할지 선택하기 위한 것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결국 선택과 집중으로 연결됩니다.
모든 프로젝트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공간도 제한되어 있고,
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자본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잘 알아야 무엇을 안 할지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미 공급과잉이 심한 영역에서 똑같은 수준의 개체를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내가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 몇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장분석과 브리더의 아이덴티티가 연결됩니다.
시장을 보고
내가 들어갈 자리를 선택하고
몇 가지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계속 퀄리티를 높이고
그 선택이 반복되면 결국 나만의 스타일이 됩니다.
시장가와 원가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회사에서 제품을 볼 때 원가만 계산한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제품 제조원가가 8만원이라고 해서 시장에서 무조건 10만원에 팔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시장가격이 10만원이라고 해서 제조원가가 11만원인 제품을 계속 생산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원가와 시장가격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크레도 똑같습니다.
내가 이 개체에 얼마를 투자했는지와
시장이 이 개체에 얼마를 지불할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브리더에게는
원가를 보는 눈과 시장을 보는 눈이 둘 다 필요합니다.
저에게 피들의 판매완료 데이터가 유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계산할 수 있는 것은 내 비용이고,
판매완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이 인정한 가치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수업료’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처음 브리딩을 시작하면 시행착오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개체를 실제로 키워보고,
성장을 보고,
브리딩까지 해봐야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쌓인 정보까지 굳이 내 돈으로 다시 틀려가며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좋은 매물이 하나 보였을 때 바로 연락하기 전에
먼저 피들 판매완료에서 비슷한 개체를 충분히 찾아볼 것 같습니다.
같은 모프,
비슷한 성별,
비슷한 성장단계,
비슷한 표현이
어느 가격대에서 반복적으로 거래됐는지 봅니다.
한 건이 아니라 여러 건을 보고,
최근 자료와 조금 오래된 자료도 비교해봅니다.
그러고 나면
“싸다.”
라는 판단이 아니라
“시장가치 대비 합리적이다.”
라는 판단을 조금 더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브리딩 사업의 승부는 판매할 때가 아니라 살 때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판매를 잘해도 지나치게 높은 원가로 시작하면 수익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좋은 종자를 시장가치 대비 합리적으로 확보했다면 처음부터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브리더의 능력입니다.
건강하게 키우고,
좋은 페어를 만들고,
좋은 결과물을 선별하고,
다음 세대에서 개선하고,
기록하고,
브랜드 신뢰를 쌓습니다.
그렇게
내가 구입했을 때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
저는 그것이 브리딩 사업의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피들 판매완료를 보면서 확인하는 것
복잡한 시세표를 만드는 것보다 저는 결국 네 가지를 생각합니다.
Q1 실제로 무엇이 판매됐는가?
A1 말이 아니라 실제 수요 확인
Q2 어느 가격대에서 반복적으로 거래됐는가?
A2 호가와 체결가격 구분
Q3 같은 모프인데 고가 거래된 개체는 무엇이 다른가?
A3 소비자가 인정하는 부가가치 확인
Q4 내가 거기에 무엇을 더할 수 있는가?
A4 다음 브리딩 방향 결정
결국 마지막 질문이 제일 중요합니다.
시세를 아는 것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시세를 알고 그 위에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치를 올려야 합니다.
저는 ‘크레 시장이 망했다’기보다 룰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좋은 모프를 남들보다 먼저 확보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쟁력이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시장을 계속 보고,
적절한 가격에 좋은 종자를 확보하고,
재고와 공간을 관리하고,
좋은 개체를 만들고,
소비자가 다른 개체와 구분할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크레 시장이 망했다.”
보다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벌기 어려워졌다.”
가 제가 느끼기에는 더 가까운 표현입니다.
그리고 사업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여기에서부터 실력 차이가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판매글보다 판매완료를 보는 이유
브리더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의 수업료는 누구나 낼 수 있습니다.
저도 많이 냈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실제 거래된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료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호가보다 체결을 보고,
말보다 실제 선택을 보고,
싼 가격보다 시장가치 대비 가격을 보고,
매출보다 남는 것을 보고,
유행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부가가치를 보는 것.
경영학 책에서 배웠던 개념들과 회사에서 매일 들여다보는 원가와 손익이 돌고 돌아 크레스티드게코를 하면서 다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개체를 사기 위해서만 피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배우기 위해 피들을 봅니다.
피들의 판매완료 기록이 더 많이 쌓일수록 브리더 입장에서는 단순한 거래플랫폼을 넘어 시장정보의 가치도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시장은 꽤 솔직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이 좋다고 말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어디에 돈을 썼는지는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판매 중인 개체보다
판매완료된 개체를 조금 더 오래 봅니다.
시장을 따라가기 전에 시장을 이해하고,
그 위에 나만의 가치를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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